두물머리 초감도 프로젝트 농부공부

인터뷰 4 _ 최대영 농부 (1)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 소 경운, 물에 잠기는 땅, 농부 기술자, 여름 쌈채소 키우기, 거름 섞어쓰기, 노지 모종, 딸기둑 상추, 나름대로 머리쓰기

인터뷰 4 _ 최대영 농부 (1)

/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 소 경운, 물에 잠기는 땅, 농부 기술자, 여름 쌈채소 키우기, 거름 섞어쓰기, 노지 모종, 딸기둑 상추, 나름대로 머리쓰기

시간​ ​:​ ​ 2016.​ ​8. 22.​ ​(월)​ ​낮 2시~6시

장소​ ​:​ 조안면 송촌리 최대영 농막, 나무그늘

조사원​ ​:​ ​디온, 방춘배

 

전부터 이 동네에서  쌈채소 농사 잘 짓기로 소문난 농부가 있었다. 소문에 그분은 이곳에서 나고 자란 타고난 농사꾼이라고, 거기다가 농사에 필요한 것들을 잘 만들고 개발하신다 했다. 농부가 바쁜 시간에 방문하면 혹 누가 되지 않을까 하여 여름의 한 가운데, 가장 뜨거워 일을 못한다는 시간대에 찾아갔는데  농장 앞 큰 나무그늘 밑에서 무언가 씨앗을 포트에 넣고 계셨다.

씨앗 넣기
나무 그늘에서 씨앗을 넣는 최대영 농부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

디 : 언제부터 여기서 농사 지으셨는지요? 여기 출신이세요?

최 : 난 여기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이고요. 학창시절 군대시절, 그리고 군대 제대하고 2-3년을 빼고는 나머지는 다 농사짓는데 시간을 보냈어요.

디 : 처음부터 여기서 농사지으셨어요?

최 : 여기는 당시는 논이었어요. 지금 4대강으로 들어간 부분에 400여평 땅이 있었는데... 주로 논농사였지. 팔당댐 생기기 이전에는 그 안에 땅이 있었는데 72년도(팔당댐 건설된 때)부터는 못하게 된 거니까. 남의 땅 얻어 경작하고 우리 땅은 많지 않았죠. 근데 그거는 내가 한 게 아니고 우리 부모님이 한 거고. 내가 한 거는 여기부터라고 해야지. 이게 논이었던 것을 농사를 짓기 시작한 거죠. 그때 당시는 여기가 ‘섬’이었어요. 무슨 말이냐면, 이 주변이 다 논이었어요. 그 가운데, 우리는 길이 없는 땅이었고 그러다보니깐 통행하는데 논두렁을 통해 소를 끌고 들어가서 갈고 갈퀴질 하고 여기서 출하된 물건을 지게로 져서 바깥으로 갖고 가서 차로 싣고 가야되는. 그게 90년대 후반까지 했던 거지. 그래서 그 당시에 내가 지게질을 많이 했어. 내가 남들보다 어깨가 넓고 키가 작은 이유가~ 때로는 박스를 많이 들고 나가기 위해서 어떻게 하믄 많이 들고 나갈까. 여기 농막에서 저기 길까지 가려면 100미터가 나올까. 그러면 그때 당시. 주로 쌈을 심었단 말이지. 그래서 내가 고리를 만들었어.

땅바닥에 ‘ㄷ’자 철사로 그림을 그려주시는데, 언뜻 봐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땅바닥에 ‘ㄷ’자 철사로 그림을 그려주시는데, 언뜻 봐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최 : 강선이라고 해서, 활쭉(?)을 요런 형태로 만들었고 여기다가 뭘 끼우냐며는,, 22미리 직관 파이프 연결하는 핀, 그래서 손잡이로 만들어가지고, 박스를 끈으로 해서…. 이걸 건다고, 이렇게. 그럼 일단 4개가 되고. 이 박스 위로다가 이렇게 넣는 거야.

방 : 아-!

최 : 이렇게 되면 8개잖아. 그리고 그 위에 겨드랑이에 넣는 거야. 10박스를 이렇게 넣는 거야.

방 : 그렇게 논둑을 걸어 나오시는 거군요.

최 : 그런데, 평상시는 비가 안 오면 그나마 상관이 없어. 근데 논두렁도 깎아지고 비가 오고 미끄러우면 내오다가 잘못하면 논두렁에 쳐박는 거야. 그래서 또 토마토같은 거는 지게나 외발수레에 싣고 가잖아? 찍 미끄러지면 다 쏟아져. (웃음)

디 : 유기농업을 하신 것은.. 그 전에 부모님 농사짓는 것 보고 그대로 배우셔서 하신 건가요?

최 : 그때는 일반 농업이었죠. 지역의 흐름이 유기농으로 가다보니까 저도 그렇게 한 거죠.

디 : 일반 농업이라면 관행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최 : 그렇죠. 관행 농업에서 유기농업으로 가는 과정에서 선택을 같이 해서 그리 된 거지.

디 : 그때가?

최 : 1995년도? 그때쯤. 회비 5만원 내고 유기농협회 평생회원 가입을 했죠. 팔당생명살림 영농조합도 95년도에 문 열었잖아. 그래서 그 다음핸가? 그 다다음해인가? 그 때 들어왔고.

디 : 그럼 관행을 하다가 유기농으로 하신 거네요?

최 : 우리 아버지 같은 경우는 농약 중독도 걸리셨고.... 그래서 병원에 실려 가서 장청소도 하고... 하여간 그때는 고독성 농약을 등에 지고 뽁뽁뽁 뿜는 거를 논에 하셨단 말이죠. 그때 당시 제초제는 별로 없어가지고 논에 나는 풀은 다 손으로 뜯어서 버리고 했지만, 도열병이니 하는 것 때문에 농약은 썼는데 하다보면 바람이 이렇게 불고 저렇게 불고 하거든요. 호흡을 통해서 내가 뿌린 약이 내게 다시 돌아오는... 그렇게 해서 5통 이상 하고 있으며는, 반나절 이상은 그걸 하고 있는 거 아녀? 그걸 마시고 그러니까 나중에 끝나고 나서 쓰러지고.. 그런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었어. 그러다가 인제 이쪽에 유기농이 자리 잡게 시작하면서 관행농 하던 사람들도 많이들 유기농으로 전환했고.

디 : 그때는 하우스 몇 개였어요?

최 : 그때는 다섯 개 였지. 지금은 네동.

디 : 몇 년 전에 저 여기 딸기 먹으러 왔었는데.

최 : 여기를요? 누구하고?

디 : 김**님하고.

최 : 그래요? 그때는 하우스가 4개였어. 지금은 4개가 됐고. 하우스 다시 지으면서 전에 42m 7동이었던 것이 87m 2동, 66미터 1동, 42m 1동이 되었지요.

방 : 하우스만 하면 전체 몇 평?

최 : 500평 정도.

방 : 노지는요?

최 : 쓸 수 있는 공간도 많지마는 못 쓰는 공간도 많아가지고. 원래 이게 적은 땅은 아닌데 땅이 못생기다 보니까 빠지는 땅이 많아가지고. 반듯하지가 않으니까 농사를 못 짓는 땅이 많은 거지.

 

소로 하우스 밭 갈고

최 : 우리 할아버지가 소로 밭을 만드는데 이 동네에서 으뜸이었어.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그런 재주가 없었어. 그리고 아버지가 귀가 어두우셔서 목소리가 커요. 그래서 소로 밭을 갈라며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소리를 지른다고. 막 그런 것들... 그런데 비닐하우스를 해야 하니까는, 비닐하우스 한 번 갈라며는 돈이 많이 든다고. 그런데 소가 뿔이 있잖아. 근데 아버지는 자꾸 소한테 소리지르고 채찍질하니까 소가 어리둥절해서. 그러다가 소가 한 번 머리를 휙 들면 비닐이 쭉 찢어지구. 그래서 내가 ‘아버지 나와보세요, 제가 해볼게요.’ 그래서 내가 시작했지. 소로다가 하우스를 가는 거지. 그러니까 내가 하니까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 집이 밭을 가는지 아닌지 모르는 정도로 내가 한 거지.

방 : 소로 밭 갈아본 사람이 많지 않더라고요.

최 : 당시 여기가 1007평이었는데. 땅이 못생기다보니까, 직선거리로 하면 150미터로 길쭉해. 거기다가 여기 꾸부러지고 이렇게 돌아가고 하니까는 상당히 먼 거리라고. 지금 이 나이 또래 사람들 중에 삽질 나보다 많이 한 사람 없을 거야. ... 그렇게 농사를 시작한 거고. 이후에 경운기가 생겼지만, 다른 ᄄᆞᆼ은 경운기로 쓰고 여기는 소로 갈고 그랬지. 그러다가 96년도인가, 경운기 보조사업이 나와서, 경운기를 한 대 더, 이 앞대가리 하나만 샀어. 그래서 저게 84년식이고 저기 있는 게 96년식이야.

나무그늘 밑에서 인터뷰

 

물에 잠기는 땅, 흙을 뜬 이야기

최 : 또 문제가 뭐냐며는 여기 지대가 낮다 보니까 비가 많이 오면 침수가 되요. 그래서 물에 잠깐 잠기더라도 잘 살아남을 수 있는 품목들. 고추류는 물 한 번 닿으면 끝나는 거고. 오이나 토마토, 요런 것들은 견디더라고.

디 : 예전에 물이 찼다는 건 언제인가요?

최 : 물이 찼다는 거는, 강에서 오는 게 아니에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우리 밭을 통과해서 아래 논으로 빠지는 거야. 그게 워낙 많아서, 순간적으로 100미리 넘게 오며는, 쏟아져 내려오는 게 다 우리 밭으로 들어왔다가 속도가 느리니까 하루 정도는 물이 차 있는 거야. 길게 있을 때는 이틀도 있었고. 어쨌든 작년까지만 해도 그렇게 됐었어요.

디 : 어, 그래요?

최 : 그런데 작년에 이 사업을 받으면서 흙을 집어넣었고. 그러니까, 논으로 쓰다가 밭으로 쓴 지가 30년이 넘었단 말이에요. 그러면 상당한 기간을 농사를 지었고 비옥한 땅이 됐는데, 새로 들어온 흙을 받아 농사를 짓고 하우스를 지어야 되는 상황이 온 거지. 작년부터. 작년 이전까지는 푹 내려간 데서 농사 지었거든. 그때 딸기밭에 왔을 때. 실은 물 때문에 질었지만 흙은 상당히 좋았어요.

디 : 네. 기억이 나요.

최 : 당시 그렇다 하더라도 흙은 좋았어요. 또 토양분석인가? 그거 해보면, 내가 농사지면서 연탄재도 넣고 거름 투여하고 땅 만들어가면서 하는데, 배수 양호 해가지고 땅이 상당히 좋았지. 농사는 잘 되는데, 단지 물이 차가지고... (하우스 지원받으면서 흙을 받았지.)

디 : 음. 작년에 여기 시설 하우스는 어떻게 지원받으신 거에요?

최 : 남양주시 농업기술센터에서 ‘하우스 천창 개폐사업’이라는 게 들어왔어요. 동네 이장이 처음으로 받았어. 그 때는 완전개폐를 받았어. 저 꼭대기까지. 그런데 완전개폐를 하니까 바람이 너무 불고 비닐이 펄럭거리면서 비닐이 울고 손상되는 거야. 그래서 보완책이 나온 게 일부만 걷어 올리는 ‘하우스 천창 부분 개폐사업’이 나온 거야. 작년에 내가 두 번째로 그 사업을 받았는데. 그간은 상담소장들이 다 와서 저래서 저렇게 됐구나 하고 그냥 가는데, 사업 당시 상담소장은 관심을 갖고는 자주 찾아와서 ‘여기가 자꾸 침수되는 이유를 알려달라’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비가 오면 빠져나갈 수 없어 침수가 된다.’ 그러니 ‘그럼 어떻게 해야 되냐?’ 유관이 있는데, 이거로 물을 빼는 건데 이거는 면사무소에 해준 건데,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집수정이 있는데, 문제는 뭐냐며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물살이 세서 우리밭에서 나가는 물을 막아서 물이 내려가지 못한다는 것이지. 그 사정을 상담소장한테 말하니까, 상담소장은 면사무소 담당자에게 문제점을 해결해달라고 누차 이야기 하고 현장까지 답사해 설명을 했는데 면사무소에서는 예산이 없다는 둥 핑계만 대다가 안 해주는 거야. 그러다가 2년차 하우스 천창개폐 사업에 내가 선정되니, 상담소장이 ‘흙을 높여서 침수 안 되게 해서 하우스 잘 지으셔요.’해. 그래서 내가 작년에 농사를 일찍 접고 하우스 철대를 혼자서 다 뽑았어. 누구 도움 없이.

2015년 천창 부분개폐 지원사업을 받아 하우스를 새로 지었다.
2015년 천창 부분개폐 지원사업을 받아 하우스를 새로 지었다.

 

디 : 그럼 여기 흙 새로 받으셨잖아요? 그 후에 농사에 변화는 없으셨어요?

최 : 근데 그 흙을 들이고 하우스를 만들고, 맨 끝동에는 열무를 뿌리고 가운데 동은 생채 로메인을 심었는데 잘 안 됐어. 나중에 100만원이 됐드라고. 얼마 안 되지만 그게 어딘가. 이쪽에는 오이를 심었는데, 남들은 모종을 심었는데 나는 씨를 직파를 했지. 땅이 잘 안 된 상태였기 때문에, 비가 오면 고랑에 있던 물이 들어오고 잘 되던 것도 막 엉망으로 됐던 건데. 그나마 100만원이 된 거여. 그런데 가운데 동의 생채랑 로메인은 아얘 돈을 못했어. 그런데도 오이는 맛있었다는 평을 받았고. 이 말은, 하우스마다 땅의 특성이 다 다른 거에요. 왜냐하며는 흙을 들일 당시에 얘기를 어떻게 했냐하면, 한 복판까지의 땅을 퍼서 이쪽에 옮겨놓고 새로 들어온 흙을 땅 판 곳에 채우고 옮겼던 흙을 그 위에 다시 덮는 식으로 했단 말이여. 그러다보니까 25톤 트럭이 흙을 판 데로 들어오니까 물기가 찍찍 나면서 빠지는 거여. 그러니깐 이쪽은 다 흙을 채우고 그 위에 원래 흙을 덮는 식으로 했는데 저쪽은 그렇게 못 하겠다고 하는 거여. 그래서 저쪽은 파지 말자, 대신 위에 갖다 붓고 포크레인 바가지로 잘 섞어라... 그랬는데, 차이가 많은 거야. 이쪽이 흙이 제일 좋은 거야. 그 다음이 저쪽, 그 다음이 저기. 이런 식으로 된 거지.

 

농부는 30년간 유기농사를 지으면서 비옥하게 관리된 흙이 아까워, 외부에서 받은 흙을 속에 넣고 원래 흙이 표층에 올라오도록 하려고 애썼다. 아니나 다를까, 어쩔 수없이 외부 흙을 섞어놓기만 한 밭은 농산물 생산이 수월치 않았다 한다. 하지만, 이런 농부가 또 시간을 들여 가꾸다보면 땅은 좋아질 것이었다. 땅은 그곳에 깃든 수많은 존재들과 운명을 같이 하며, 농부도 그 중의 하나일 테니까.

 

농부 기술자, 쌈채소 키우기

방 : 양수리나 부용리에서는 볼 수 없는 하우스 구조인데, 차광막이 있잖아요?

디 : 네. 그러네요. 듣기로, 여름철에 너무 햇빛이 너무 세서 온도 조절용으로 저렇게 만드신 거지요?

최 : 봄부터 가을까지 유용하게 써요.

디 : 지금(한여름) 하우스 안에 저런 쌈채가 있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최 : 음. 근데 이 시설 아니어도 가능할 수가 있어요. 농사짓는 사람이 씨를 계속 모종을 부으며는 처음에 딸 때는 좋아요. 오래 따지 못해서 그렇지. 내가 아는 어떤 농가는 모종을 정식을 하면 바로 또 씨를 부어놓는대요, 계속 이어서 하다보면 여름을 넘는다는 거지. 그치만 나는 출하도 해야 되지 씨앗도 넣어야 되지, 뭐도 해야 되지, 그게 다 혼자 안 되니까, 관리할 시간도 부족하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만든 건데.

방 : 형이 아이디어 내신 거에요.

최 : 그러니까 차광막은, 사업 내용에는 이 내용이 없어요. 그런데, 요거는 내가 썼던 철대를 요렇게 짤라서 붙여서 차광막을 위해서 이렇게 한 거에요.

직접 시공한 차광막을 설명하는 최대영 농부
여름에도 좋은 쌈채소를 생산하기 위해 직접 차광막을 설치한 최대영 농부. 

디 : 그러니까 3중이네요.

방 : 위에만.

최 : 이 철대는 재활용을 한 거요. 열은 위로 다 빠지고, 그것만 가지고는 이 안에서 일하기는 힘들어요. 그래서 이걸 설치함으로 인해서 한 낮에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래서 이거를 믿고 내가 한 낮에 파프리카 작업을 하다가 더위를 먹었다는 것이죠.

(일동 웃음)

디 : 저렇게 차광막 안에 치게 된 거는 언제 생각하게 되신 거에요?

최 : 하우스 설치할 때 내가 감독을 내내 했어요. 이렇게 하면 차광막 치기가 불편한데, 이런 생각이 먼저 든 거에요. 저렇게 개폐기를 달며는 저 위에 차광막을 칠 수 없는데?

디 : 그 전부터 차광막을 치셨었던 거에요?

최 : 네. 먼저 하우스에서는 저런 장치가 없이 얕았단 말이죠. 그래서 어떤 수를 쓰든지 내가 차광막을 칠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저렇게 하우스를 지으며는 차광막 못 치는데? 개폐기가 감아 올리며는 막 꼬일 텐데? 이런 식으로 막 생각을 한 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치지 어떻게 치기 막 고민을 하다 보니깐 아 저 위에가 열리니까 안으로 치면 되겠다. 생각을 한 거죠, 순간. 이거 다 만들어놓으니까 어떤 사람은 아이디어 좋네, 잘 해놨다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어디서 이렇게 하는 사람 또 봤다고 해. 그러니까 나는 어디서 본 적도 없는데, 누군가도 또 이렇게 하고 있다는 얘기야.

방 : 옛날 하우스는 오래 되어가지고 개폐도 안 되고, 온도 조절도 쉽지 않았었지요?

디 : 제가 딸기 따러 왔을 때, 냉해를 입었었나... 되게 하우스가 낮았고 질퍽질퍽했고... 느낌만 기억이 나요.

최 : 그때는 개폐기가 없었어요. ... 개폐기가 설치한 지 하도 오래 되어가지고 (손잡이를) 돌리다보면 여기서 뚝 끊어지고 저기서 뚝 끊어지고.(웃음) 철이 다 녹이 나서 썩어서 바람 한 번 쓱 불어도 비닐 벗겨지고. 그래서 비닐을 1년에 한 번 갈고 했어요.

방 : 그래도 쌈채소는 최고의 품질로 언제나 내시고...

최 : 그래서 내가 아까 말을 했지만, 올해는 경험하는 해. 뭐, 작부에도 없던 상추, 쑥갓 심었다구. 그것이, 원래 계획되었던 다른 생산자들이 그 작물을 생산하지 못했는데, 내가 한 거지.

 

농사 요령 : 거름 섞어쓰기, 노지모종, 딸기둑 상추, 파프리카방충망

우리는 본격적으로, 그분의 농사짓는 비법을 듣고자 귀를 쫑긋 세웠다.

모종을 서늘하게 키워야 한다는 최대영 농부. 노지에 비가림 시설만 해서 모종을 키우고 있다.
모종을 서늘하게 키워야 한다는 최대영 농부. 노지에 비가림 시설만 해서 모종을 키우고 있다.

최 : 그리고, 모종을 노지에서 길러야 된다구.

디 : 저렇게요?

최 : 응. 비가림만 하고. 비만 안 맞게 해놓고 바깥에서 길러야지 서늘한 기후에서. 짧고 단단하고 그런 거를 하우스에 옮겨 심으면 물건이 좋은데, 하우스에서 모종을 기르면 길게 나온다고. 그걸 심으며는 역시 추대가 빨리 나오는 거야. 그런데 심은 상추들이 다 그런 거야.. 그래서...

농부의 여름 쌈채소 하우스
본인의 농사 비법을 전해주는 최대영 농부

디 : 다른 비법은 어떤 게 있나요?

최 : 그리고 내가 아직 안 해보고도 이렇게 해야겠다 싶은 게 있는데. 내년에는 (엽채류 두둑을) 딸기 두둑처럼 높이겠다는 거야. 지금은 고랑이 가운데 하나인데, 고랑을 세 개를 만들겠다. 왜냐하면, 양 옆으로 보면 물받이가 있는데 그거보다 작물이 아래 있으며는 겨울이면 괜찮겠지마는 여름철에는 신선한 바람을 맞아야 하는데, 바람을 못 맞으니까. 그리고 두럭은 식물체의 집인데 거길 자꾸 밟으며는 딱딱해지고 안 좋은 거지. 내년에 해보면 알겠지마는, 그렇게 수확을 한다고 할 때 어떤 효과가 기대가 되냐면, 쪼그리고 앉아서 따지 않는다는 거지. 딸기 의자가 있어요. 바퀴 달린 거. 거기 앉아서 빠꾸를 하면서 따는 거야. 그러면 ‘다리 아퍼, 허리 아퍼~’ 이게 없는 거지.

방 : 엽채류가 쪼그리고 앉아서 그 사이를 밟고 가면서 따야 되니까.

최 : 그거를 딸기처럼 고랑이 1개가 아닌 3개가 되면 바람이 더 잘 통할 거야. 그걸 내가 할 거야... 그걸 이 동네에서 하면 내가 1번이 되는 건데. 또.

디 : 웃음. 그러면 제가 또 1번으로 취재 올게요.

최 : 그리고 한 가지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어. 뭐냐 하며는 방충망. 그걸 치지 않으면 진짜 농사짓기 힘들다는 생각. 특히 파프리카 같은 거. 나방이 들어와서 구멍을 내서 알을 낳아놓고... 파프리카를 갉아먹어서 썩어서 떨어지는 게 너무 많으니까. 이런 부분을 바로잡으려면 근본적으로 못 들어오게 만들어야 돼. 방충망으로.

파프리카 하우스
파프리카 하우스

방 : **이형, 포집기 만드니까 벌레 많이 들어간대요. 그런데 그래도 많데요.

최 : 포집기는 밤에만 필요한 거 아냐. 그 안에 나방을 잡아넣을 수도 있어. 근데, 딴 데 있는 것도 그 불빛으로 자꾸 들어온다는 거지. 물 퍼낸다고 샘물이 마르나... 그 주변, 일대에 있는 것들이 오히려 달려오는 거 아닌가.

방 : 그럼 다른 밭에다 곤충포집기를 놔야겠네요.

최 : 아니면 포집기를 하우스가 아니라 하우스 바깥에 구석에다 해놔서...

방 : 유인을 해야한다는 거죠?

최 : 그렇지.

방 : 그리고... 저 멀칭... (부직포) 어떤 점이 단점이에요?

최 : 이런 비닐은 모종을 심을 때 푹푹 들어가잖아. 이건 물이 고이는데 저건 물이 안 고여. 좋은 거는 흙을 치지 않는다는 거지. 핀을 꽂아서.

방 : 네. 오래 쓸 수 있고.

최 : 내가 뭔가를 쓰면 상당히 오래 쓰는 편이에요. 이 비닐도 2년 째 쓰고 있고. 84년식 농기계도 아직 쓰고 있고.

디 : 부직포를 써서 안 좋은 거는 뭐가 있어요?

최 : 폐기물 처리가 좀 어려운 문제가 있어요. 비니루는 수거가 되는데 저거는 잘 안 돼.

한참 인터뷰를 이어가다가 우리는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나 모종상으로 이동했다. 사람들이 체험이나 교육을 위해 농장을 방문하면 보통은 농작물이 있는 밭만 둘러보지만, 실은 농장 이곳 저곳, 농부의 지혜가 가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나름대로 내가 머리를 썼지

디 : 이거 지하수인가요?

최 : 이 통에 받아뒀다가 모종에 주는 거에요. 그래서 저번에 빗물 어떻게 쓰면 좋을까 하는데 모종상이 좋다는 거에요. 지금 빗물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모종을 키우는데 쓰는 건 괜찮을 거다...

방 : 이게 용량이?

최 : 2.5톤

디 : 물 얘기 나온 김에 마저 여쭙고 싶은데요. 여기는 지하수만 쓰시나요?

최 : 내가 먼저 처음에 하우스 짓고 관정을 파고..그랬더니 저 옆에 그 앞에 하나씩 생기구. 처음에는 관정을 파서 물이 너무 쎄서 호스를 잡고 있지 않으면 춤을 춰. 하여튼 저 호스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흔들어대는 거야.

디 : 수압이 굉장히 센 곳이었네요.

최 : 그런데 그 후 십여 년을 쓰니까 양이 좀 적어졌어. 그래도 20년 전에 판 것을 아직도 쓰고 있어. 그 후로도 파도, 또 파고. 작년에 하우스 시설 새로 하면서 또 하나 팠는데 잘 나와서 수막시설 하고 있지. ... 여기 수막하는 거 배관도 나름대로 내가 머리를 썼지. 남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데.

디 : 어떻게 하시나요?

최 : 남들은 지하수가 올라오면서 바로 여과기를 통과하고 살수를 하거나 물을 쓰는 데, 나는 여과기 전에 밸브를 하나 만들어 달았어. 처음에 나오는 물을 여과기로 안 보내고 빼는 거야. 그러면 모래가 올라오더라도 여과기 가기 전에 빼주고 가기 때문에 일정 시간 보내고 난 다음에 들여보내면 그때는 모레가 잘 안 들어간다 이거지. 아주 안 가지는 않겠지만. 그런 다음에 퇴수호스를 잠그며는 분수호스가 잘 안 막힌다 이거지. 그리고 이 세 개를 앞에서 배관을 다 묶어가지고, 물의 양이 세 동이 다 비슷하다 이거지. 한 동에 하나씩 따로 따로 설치하면 어느 동엔 물이 더 들어가고 어느 동엔 덜 들어가고. 이런 게 있다고. 그건 관정이 물이 더 나오는 게 있고 덜 나오는 게 있고 하다보니까. 나는 앞에서 쪼인을 했으니까 세 동이 다 똑같은 양을 보내주지.

방 : 하나가 고장이 나도 물이 나가고...

최 : 되지. 저 끝의 경우, 맨 끝의 5미터 정도는 내가 생각하는 두께의 못으로다가 더 넓혀놨어. 그럼 거기에 물이 많이 쏟아진다고. 물이 많으면 어는 피해가 덜 하지. 모터가 세 개다 보니까, 다른 것들은 모터가 다 하우스에 있고 하나만 밖에 있다고. 그러니까, 하우스 모타는 다 끊고 고거 하나만 살려놔. 소량씩 물을 더 공급해주는 거야. 그럼 다른 데 보다 더 따뜻하고 스트레스 덜 받고. 또 한 낮에 너무 추우면 그거 모터 하나만 틀어주면 돼. 남들보다 물을 좀더 빨리 올리는데 바깥에 것이 스타트가 된다는 거지. 이런 게 요령이라고 하는 거지. 어디 가보면 모터가 하우스 바깥에 있는데 어디 갔다 왔더니 제대로 못 올려가지고 모터가 얼어가지고 녹히고 그러는 일이 있는데, 나는 온도를 봐가지고 물을 올릴 필요가 있다 하며는 어디를 가지를 않아.... 그런 거 하나 하나를 생각은 다 한다고 해도 얼마만큼 실천을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지.

최대영 농부가 작성한 수막 배관도.
최대영 농부가 직접 작성한 수막 배관도. 

 

농부는 자꾸, '별 것 아닌데'라면서 말씀을 멈추려 하셨지만 또 재차 질문을 했다. 그러면 '내 나름대로'라고 말을 앞에 붙이며 본인의 노하우를 소개해주셨다. 내가 이런 질문들을 하면, 다른 농부들도 인터뷰 내내 쑥스러워 하셨다. 각자 주어진 환경에 따라, 자신에게 익숙한 것들과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것 뿐이라고... 실로 농부의 기술이라는 것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 농부의 좀 남다른 쌈채소는 이토록 세세한 모든 '별 것 아닌' 것들 소산이다.